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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한번 영하 10도로 내려간 날씨가 풀릴 생각을 안 합니다. 강약이 없이 무조건 영하 두자리가 왠 말인지. 신종플루로 사망한 환자가 생겼단 소리와 함께 전 국민이 갑자기 콜록대며 병원을 드나드셨다 봅니다, 지난 주말엔. 나도 하긴 별 생각 없이 여의도 내과를 찾았다가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으니.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스키장도 포기하고 집에서 꼼짝 안하고 몸을 사렸으나, 너무 아팠습니다.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어떻게 못하겠어서 그냥 울다가, 그래봤자인듯싶어 밀린 시트릿 가든 보다가, 또 아퍼 아퍼 그러면서 울다가. 혼자 얼마나 앓았는데.

혼자 살아본 사람은 압니다. 아플 때만큼 서럽기도 힘들다는 거.

얼마나 서러웠는데, 신랑이란 인물은 요즘 나만 보면 무서워서 피하더니 가끔 와 형식적인 멘트를 날릴 뿐 왠지 속으로 고소해한단 느낌도 들고. 내가 엄청 의지하며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요, 여기 없어 한국 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모르는 게 분명한 것이 감기 빨리 낫길 바란다는 (그저 바랄 뿐이라니,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궁금하지도 않나..) 보내나 마나 한 이메일이나 찍 보내고는 연락이 없길래, 내가 기운을 추슬러 물어봤죠, 도대체 댁한테 난 보호본능을 일으키질 않는 거냐고, 여지것 무답입니다. 뭔가 켕길땐 이렇게 연락을 끊곤 하죠, 바쁜 척하며, 이젠 뻔합니다. 나 아픈 거 뻔히 아는 우리 엄마는 아침에 문자로 세달 전 (모든 금융기관에서 내가 외국인이라며 단 돈 10만원짜리 교통카드도 내 주길 거부하던 시절 엄마 카드를 쓰고 다녔거든요) 긁은 카드 할부대금 보내라며 금액만 달랑 보내오시더라고요. 재깍 송금 해 드렸습니다. 나의 배프 C양은 걱정은 되긴 하지만 적응하느라 그러는 거라고 원래 한국 와서 한번씩들 다 아프다며 그래도 고맙게 밥 사준다고, 근데 이번 주말에 자기 세부 갔다 와서 사준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물론 약 올리려는 취지가 아닌 거 알지만 나도 세부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고 싶거든요. 아까 점심에 유회계사는 또 내가 뭐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게 생겼다나 아픈 게 안 어울린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니, 오늘도 역시 그러게 빨랑 돌아가라며 부채질을 팔랑팔랑 하는군요.

아직도 손발에 힘이 없고, 귀가 멍하고, 눈도 침침하고, 최선을 다해 고상함을 유지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요, 주변 인물들의 행태를 보고 결심했습니다. 그냥 내 힘으로 살자고.

그냥 앞으로도 내 길 내가 개척 하자구요. 내가 벌어서 내가 쓰자. 정승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힘껏 벌어서 (차마 개처럼이란 소린 안 나옴) 내가 쓰고 싶은 데로 쓸려구요. 내 꿈 내가 이루고 내 행복 내가 찾아 나설려구요.

아파서 이불 뒤집어 쓰고 있으니, 감기 앓는 것이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배영을 할 때,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내 소리만 들리지 않던가요? 내 숨소리, 내 몸짓 소리만 들리지요.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수영입니다. 꼭 나 혼자만 해야 하는 것이.

평범한 진실. 나는 나 혼자만이 살릴 수 있더군요.

누구의 도움 없이 씩씩하게 올 한 해도 많은 것을 이루겠습니다. 12월 말일에 또 난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 오로지 내년을 향한 희망뿐이다 그럴려구요.

나는 나 혼자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아플 여유가 없는데 아직도 어질어질 꿈 속에서 말하고 걷고 먹고 그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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