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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

7일 금식했어요. 하루 세번 끼니때에 맞추어 효소즙을 물에 희석시켜 한 컵씩 마셨고, 어지러울까봐 죽염을 한 줌씩 먹었고, 비타민 C 보충을 위해 감잎차를 마신 것 외엔 진짜 금식. 아무 생각도 안하고 새벽에 눈이 떠지면 일어났고 밤에 어두어지면 잤습니다. 정말이지 배가 고프지도,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르지도 않았고, 그저 드는 생각은 사람이 밥을 안 먹으니 참 시간이 많이 남는구나 하는 거.

그러곤, 7일 금식을 마치고 3일 미음만 먹고 4일째 들어선 날. 이젠 일반식을 먹어도 괜찮다, 되도록이면 육류는 피하고 대신 유기농 야채 위주의 찬으로 먹도록 해라. 분명 그리 들었는데, 그리고 식탁에 일반식이 놓였는데, 열흘 내내 음식을 씹어 넘기지 않았더니, 씹어야 넘기는 반찬에는 손이 안 갑니다. 왠지 먹으면 안될 것 같아 손이 안 가더이다. 풀조각 하나 씹었는데 설렁설렁 씹으면 안 될 것 같아 풀 쪼가리 하나를 꼭꼭. 풀 외에 다른 반찬은 아예 집어 들지를 못하겠더구요. 겨우 열흘. 몇십년을 씹어대며 뜯어대며 그리 잘 먹었댔었는데 겨우 열흘을 굶었더니 음식을 씹어 넘기는 것이 익숙치 않습디다. 안된다고 십계명에 쓰여 있는데 마치 하는 것 같은 죄스러움까지 듭니다.

이토록 사람이란 착한 존재네요. 길들이는 대로 길이 들여지는 말 잘듣는 착한 동물이요. 영이 있는 사람은, 고귀할 수도 있는 사람이란 존재는, 또 그저 동물이기도 합니다. 자라며 대접받은 대로 길들여지는 그저 동물 말입니다. 어느 한 구석 평등한 점이란 찾아볼 수 없는 세상은 사람을, 영이 있고 생각이 있고 자존심이 있고 눈물이 있는 사람을, 날 때 부터 평등치 않게 대우하죠. 아무 이유없이 누군가는 평생을 ‘넌 그렇게 맘대로 배고프다고 밥상에 오른 음식 씹고 뜯고 그러면 안되는 인간이야’ 하는 길들임을 당하며 살죠. 그래도 된다 누가 중간에 말을 해 줘도, 그래도 아닌 것 같아 하루도 맘 놓고 먹지를 못하죠. 멀리 저 북한주민들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 또 우리 부모님들도 그러시지 않습니까. 이제 괜찮다고 이거 보시라고 우리 이렇게 잘 산다고. 아무리 말씀을 드려도 일제시대와 전쟁을 살아내신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들은 못 드십니다. 식탁 위 그 화려한 음식 그렇게 막 못 드십니다.

오늘이 겨우 미음이라도 먹기 시작한지 나흘째이니 그럴테이지. 열흘만 더 지나면 분명 마시기만 했던 7일의 금식 기간을 기억이나 할까. 떠들며 먹느라, TV 보며 먹느라, 10분만에 먹느라, 풀 쪼가리 꼭꼭 씹어 삼키던 오늘을 기억이나 할까.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들 과연 그렇게 한만 맻히셨댔을까. 그깟 화려한 음식 좀 덜 먹었다고, 그까짓 좋은 옷 덜 입고, 좋은 데 구경 덜 하셨다고, 과연 우리보다 불행했다 장담 할 수 있을까.

배고픈 고통, 난 참은 적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긴 했으나 그려려니 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이유없이 주어지는 처지, 환경, 때론 어의없으나 어쩜 그냥 그려려니 하고 살면 그 뿐일 수도 있습니다. 부당하네 공정치않네 따지고 대들 상대가 없으니, 그저 그려려니 하고 우리 어른들처럼 주름 많은 얼굴 찡그리며 한번씩 크게 웃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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