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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대신 술

지난 주는 금, 토, 수, 금, 토 이렇게나 자주 저녁에 술을 먹었네요. 먹고싶어 먹은게 아니라 누가 날 필요로하여, 또 관계유지차, 또 비지니스 목적으로, 그래서 먹었죠. 내가 달리 술 먹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공부 좀 하다 온 몸이 쑤셔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싶어 냉장고를 뒤져 찾은 맥주캔을 땄고요.

글 쓰는 걸 내가 좋아하나, 오래동안 한 글자도 못 썼습니다. 글이란게 원래 고뇌 속에, 아니, 고뇌까지야 아니어도 외로움속에라도 거주해야 쓰여지는 건데, 요샌 만사 편하여 글이란 게 쓰여지질 않습니다. 편하기만 하면 곧 권태로와 글이 또 쓰여질텐데, 어찌어찌하여 좀 더 재미있으며 연봉도 올릴 수 있는 직장으로 옮길 기회가 곧 생길 듯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길 듯해 기대가 되고 그렇네요. 갑작스런 변화이긴 하나, 직장이야 언제든 옮기고 그러는 거라 특별한 건 없고. 요즘 저녁에 수강 들으며 공부하는 게 있는데 이 천금같은 봄날 주말에 괜히 신경쓰여 공부한답시고 집에 있어야 하는 애로사항이 있는데, 그거야 뭐, 꼭 하지않아도 되는 공부라 역시 별로 특별할 건 없고. 그러고 사느라 글을 쓰지를 못 했습니다.

밥집에, 이자카야에, 와인바에, 카페에, 서울은 뭐 하나 사람 사는데 부족함이 없는 도시네요. 밥만 먹고 사냐하시겠지만, 네, 밥 한끼, 카푸치노 한 잔을 마셔도 난 잘 먹고 잘 마셨단 느낌이 드는 게 좋거든요. 맛없는 밥집이 없고, 맛없는 술집이 없고, 맛없는 카페가 없는 게 서울입니다.

부족함이 없어 글이 안 써집니다. 부족함이 없어. 겉으로 보기엔 참 부족함이 없어.

나는 나일뿐. 나는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니고, 나는 나인데. 난 어른이라 어른처럼 말을 하고 행동을 합니다. 어른에게 주어진 특혜, 술. 대신 술을 하루 걸러 마시며 어른처럼 말을 하고 어른처럼 행동을 하고 어른처럼 돈을 씁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족함없는 척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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