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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뭔지 모르게 찹찹하고 괜히 힘들고 힘이 없고 그랬던 오늘, 월요일. 느즈막한 퇴근 길에 왜 이 시간에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그러면서 한강둔치 주차장을 향해 맨날 그랬듯이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우연히 왼편을 쳐다보곤 깜짝 놀랐습니다. 벚꽃이요. 안그래도 하얀 꽃 나무 아래 조명들을 달아놓아 Christmas tree 해 놓은 것 마냥 환~한 벚꽃이 글쎄 주말 사이에 폈더라구요. 정말 주말 이틀 사이에. 사람들이 많았던 거 벚꽃축제 기간이라서였더라구요.

아~ 저게 벚꽃이구나, 곁눈질하며 걷다가, 걷다가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거짓말같은 기적이지 않은가 싶어서요. 벚나무였다니, 난 이 길을 지난 6개월 내내 아침저녁으로 걸었었는데, 6개월 동안 한번도 저기 나무가 있었다는 거 조차 몰랐는데, 저게 다 벚꽃을 맺고 있던 벚나무였다니. 그리고 거짓말처럼, 한날 한시에 같이 피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주말새 저리 활짝 폈다니. 지난 주에 점심 먹으러 나와서 분명 그랬는데, 어디 벚꽃이 펴, 아직 한참 멀지 않았어? 분명 그랬었는데.

무심코 땅만 보고 6개월을 걸었던 내 출퇴근 동선에, 왼편엔 벚꽃나무가, 오른편엔 개나리와 진달래가, 오늘보니 있었습니다.

난 왜 가진 게 없을까, 난 왜 할 줄 아는 게 없을까. 난 왜 혼자일까, 난 왜 태어났을까.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인생. 그래도 멈추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아, 그래도 주저앉지는 말아야 할 것 같아, 조심조심 불안불안 한 걸음 한 걸음. 그랬더니 어느 순간 벚꽃나무도 개나리도 진달래도 기적처럼 내가 걷는 길에 하나씩 핍니다.

봄은 기적입니다. 거짓말같은 기적. 우리 인생도 기적입니다. 아직 벚꽃이 필 시기가 아닐 뿐인거죠. 아직 믿지 못 할 뿐인거죠.

여의도 벚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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