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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구 전략

06-Jan-11

Loan Officer들이 loan을 underwrite할 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는데 Exit Strategy, 출구 전략이다. 절대 그럴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불가항력으로 은행에 손실을 끼칠 시 손실 금액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당연히 new loan이 나갈 때 미리 생각을 해 두어야 한다.

원래 베트남 전쟁 때 미국 국방부서 내에서 사용된 말이라 하는데, 2008 경제위기 이 후 미국 정부가 자주 언급하여 요즈음엔 귀에 익숙한 말이기도 할것이다. 경제 위기시 그를 극복하기 위해 내렸던 금리등의 형태로 나타난 과잉 유동성이나 각종 완화정책을 경제에 큰 부담이 가지 않게 서서히 거두는 경제적 전략으로 너무 빨리 사용해도 문제이나 너무 늦어도 그에 따른 부작용이 있기에 신중히, 가장 적절한 시기에 시행 되어야 한다.

그럼, 우리는?

삶을 살면서 우리도 매번 이 출구 전략을 생각 해 둘 필요가 있는 걸까?

알게 모르게 우린 다 생각을 한다. 보험을 들고, 적금을 붓고, 집을 소유하며, 펀드에 가입하고, 연금을 들어놓곤 한다. 이력서를 update하고, 사업구상도 한다. 해외취업이나 투자이민을 알아보기도 하고, 자격증을 따거나 대학원에 원서를 내기도 한다. 안 좋은 상황을 대비,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다들 한다.  

그런데, 안 좋은 상황을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우리 인생에 몇 번 안되는 기쁜 날들에는?

간절히 원하던 학교나 직장에 합격을 한 날, 내 일생일대의 꿈이 실현되는 날, 첫 눈에 반한 누군가와 열애 끝에 결혼에 성공하는 날, 난생 처음 내 아이를 가져보던 날 등의 감격스럽고 기쁜 날, 세상을 다 얻은 것만 같은 정말 몇 안 되는 기쁜 순간들에도, 우리는 삭막하게 출구를 찾는 연습을 해야 하는 걸까.

그러니까, 누군가를 많이 사랑하고 있는 오늘, 그 사람과의 끝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데, 혹여 끝이 났을 때 내가 입을 충격과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한 전략을 미리 생각해야 하는가 말이다.

아니, 물론 아니다.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어야 하는 게 삶이다.

우리의 삶을 고작 loan이나 전쟁이나 경제위기에 견주어 전략적으로 설계를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난 이 loan이 왜 나가야 하는 지 분명한 이유를 들어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옳건 그르건), 난 내가 왜 이 사람을 사랑하는 지 분명히 설명을 못 한다.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 그러니 출구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만일 혹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떠나 버리는 날엔, 아무 전략이 없었으니, 그저 당하면 된다. 사랑에도 종류가 있고 깊이가 다르니, 조금 덜 아프기도 할 것이고, 조금 더 아프기도 하겠지.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란 시처럼, 훗날 얼마나 아프건 상관없이, 오늘 나는 그를 내가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막상 가 보니 장미빛깔이 아니더라’일 수 있는, 그러나 분명 우리가 꿈꿨고 뜻했던 길목의 어느 한 순간에, 나는 그저 웃으면 그만이다. 그냥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면 되는 것이다.

막상 글로 옮기고 나니 오늘은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생각을 했다싶다. 또 깨닫는 평범한 진리. The Power of Now, 지금 이 순간을 살면 되는 것을, 쯧쯧..

감기

05-Jan-11

한번 영하 10도로 내려간 날씨가 풀릴 생각을 안 합니다. 강약이 없이 무조건 영하 두자리가 왠 말인지. 신종플루로 사망한 환자가 생겼단 소리와 함께 전 국민이 갑자기 콜록대며 병원을 드나드셨다 봅니다, 지난 주말엔. 나도 하긴 별 생각 없이 여의도 내과를 찾았다가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렸으니. 주사도 맞고 약도 먹고 스키장도 포기하고 집에서 꼼짝 안하고 몸을 사렸으나, 너무 아팠습니다. 누워도 아프고, 앉아도 아프고,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뭘 어떻게 못하겠어서 그냥 울다가, 그래봤자인듯싶어 밀린 시트릿 가든 보다가, 또 아퍼 아퍼 그러면서 울다가. 혼자 얼마나 앓았는데.

혼자 살아본 사람은 압니다. 아플 때만큼 서럽기도 힘들다는 거.

얼마나 서러웠는데, 신랑이란 인물은 요즘 나만 보면 무서워서 피하더니 가끔 와 형식적인 멘트를 날릴 뿐 왠지 속으로 고소해한단 느낌도 들고. 내가 엄청 의지하며 살고 있는 친구가 있는데요, 여기 없어 한국 감기가 얼마나 독한지 모르는 게 분명한 것이 감기 빨리 낫길 바란다는 (그저 바랄 뿐이라니, 어디가 얼마나 어떻게 아픈지 궁금하지도 않나..) 보내나 마나 한 이메일이나 찍 보내고는 연락이 없길래, 내가 기운을 추슬러 물어봤죠, 도대체 댁한테 난 보호본능을 일으키질 않는 거냐고, 여지것 무답입니다. 뭔가 켕길땐 이렇게 연락을 끊곤 하죠, 바쁜 척하며, 이젠 뻔합니다. 나 아픈 거 뻔히 아는 우리 엄마는 아침에 문자로 세달 전 (모든 금융기관에서 내가 외국인이라며 단 돈 10만원짜리 교통카드도 내 주길 거부하던 시절 엄마 카드를 쓰고 다녔거든요) 긁은 카드 할부대금 보내라며 금액만 달랑 보내오시더라고요. 재깍 송금 해 드렸습니다. 나의 배프 C양은 걱정은 되긴 하지만 적응하느라 그러는 거라고 원래 한국 와서 한번씩들 다 아프다며 그래도 고맙게 밥 사준다고, 근데 이번 주말에 자기 세부 갔다 와서 사준다고 잘 다녀오겠다고 전화가 왔더군요. 물론 약 올리려는 취지가 아닌 거 알지만 나도 세부 어떻게 생겼는지 가보고 싶거든요. 아까 점심에 유회계사는 또 내가 뭐 찔러도 피한방울 안 나오게 생겼다나 아픈 게 안 어울린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니, 오늘도 역시 그러게 빨랑 돌아가라며 부채질을 팔랑팔랑 하는군요.

아직도 손발에 힘이 없고, 귀가 멍하고, 눈도 침침하고, 최선을 다해 고상함을 유지하며 일을 하고 있는데요, 주변 인물들의 행태를 보고 결심했습니다. 그냥 내 힘으로 살자고.

그냥 앞으로도 내 길 내가 개척 하자구요. 내가 벌어서 내가 쓰자. 정승처럼 쓸 수 있을 때까지 힘껏 벌어서 (차마 개처럼이란 소린 안 나옴) 내가 쓰고 싶은 데로 쓸려구요. 내 꿈 내가 이루고 내 행복 내가 찾아 나설려구요.

아파서 이불 뒤집어 쓰고 있으니, 감기 앓는 것이 수영하는 것과 비슷하단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배영을 할 때, 주위에 사람들이 있어도, 내 소리만 들리지 않던가요? 내 숨소리, 내 몸짓 소리만 들리지요.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수영입니다. 꼭 나 혼자만 해야 하는 것이.

평범한 진실. 나는 나 혼자만이 살릴 수 있더군요.

누구의 도움 없이 씩씩하게 올 한 해도 많은 것을 이루겠습니다. 12월 말일에 또 난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없다 오로지 내년을 향한 희망뿐이다 그럴려구요.

나는 나 혼자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누구도 대신 살아주지 못합니다.

아플 여유가 없는데 아직도 어질어질 꿈 속에서 말하고 걷고 먹고 그러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

Happy New Year!

01-Jan-11

장기하가 ‘별일 없이 산다’를 상대방에게 얄밉고 쎄게 보일때 í•  말이라며 만들었답니다. 나 별일 없이 산다, 사는 게 재미있다.

2011년 한 해. 우리 다 별일 없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은, 어쩜 좀 무료하고 따분하나 그럭저럭 재미난 때도 많은, 별일 없는 한 해 보내십시요.

귀한 목숨들 그 어떠한 이념 전쟁이나 자연재해나 황당한 사건사고로 잃는 일 없이 뉴스조차 무료하고 따분한 그저그런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그건, 사랑이었네> 한비야

30-Dec-10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언제나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돈키호테>의 내용이다. 대단히 비현실적이고 비이성적인 말이지만 나는 이것이 젊음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도전, 무모하리만치 크고 높은 꿈 그리고 거기에 온몸을 던져 불사르는 뜨거운 열정이 바로 젊음의 본질이자 특권이다. 이 젊음의 특권을 그냥 놓아버리겠다는 말인가, 여러분.’

어린 시절 계획한 ‘걸어서 세계일주’를 위해 과감히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7년간 세계 오지만을 골라 했던 여행담이 책으로 엮어 발간된 후, 나오는 족족 best seller에 steady seller인 한비야의 가장 최근 에세이 <그건, 사랑이었네> 중 ‘길을 묻는 젊은 이에게’ 에 쓰인 마지막 문장이다.

난 왜인지 이 장을 심심할때, 배고플때, 별 이유없이 슬플때, 여러번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든든했다.

‘지금, 이 순간 새로운 길을 택한 후 잔뜩 긴장한 채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도 지금 당신과 똑같은 처지이고 똑같은 마음이라고, 그러니 당신과 나 우리 둘이 각자의 새로운 문을 힘차게 두드리자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당신을 생각할 테니 당신도 나를 생각해보라고, 그래서 마침내 각자가 두드리던 문이 활짝 열리면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고 등 두드려주며 그동안 애썼다, 수고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자고.’

이 문구는 책 뒷 편에.

그래서 사람은 혼자 못사나보다. 난 그동안 한번도 개인적으로 본적이 없는 한비야씨의 글을 읽고 주저앉아버리려다 일어나 걸었고, 여기가 편하나 다른 문을 두드렸고, ‘남이 정해버린 나’가 아닌 ‘나만 아는 나’란 누구인가에 대해 수백번 물었으며 그에 따른 나에 맞는 customized 된 맞춤꿈을 꾸었고 그 꿈을 키웠다.

2011년이란 새로운 문 앞에 서 있는 나, 또 당신.

2010년은 나에게 있어 정말 의미있는 해였을 것 같다라는 내용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몇 통 받았었는데, 별로 수긍이 안간다. 집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긴 했으나, 솔직히 그게 무슨 대단한 의미가 있나. 저기 살다가 이젠 여기 산다 뿐, 난 아직 하나도 이룬 게 없는데. 그리고 나에겐 2011년이, 2012년이, 또 5년 후가, 10년 후가, 있는 것을.

2010년을 하루 남긴 오늘, 감기 때문에 몸도 성치않은데, 왠지 난 내년에 대한 기대로 잠도 잘 안온다. 가는 한 해가 하나도 아쉽지 않고, 뒤돌아 보고 싶지도 않고, 게다가 아무 후회도, 미련도 없다. 오로지 내년에 대한 희망만 있을 뿐이다.

뭔 희망이냐고?

내년에 난 더 멋있어 질 예정이다.

더..라..이 시건방의 원천은 뭐냐고?

자존감이다. 난 나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인정한다.

2011년이란 새로운 문 앞에 서 있는 나, 또 당신.

난 준비가 됬는데. 내 앞에 있는 문을 힘차게, 열릴 때까지 두드릴 준비가.

What about you?

오늘 우울한 이유

27-Dec-10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만일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영국이나 미국이나 일본이나 프랑스의 국민이었더라면.

아주 가끔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지 않고, 그러니까 이른바 선진국이나 강대국에서 태어났더라면. 난 어른이 되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

단순히 영토가 크고 자원이 많아 노력에 비해 잘사는 부유함, 즉 경제강국이 선진국을 define하지 않는다. 물론 GDP등으로 순위를 매길 수는 있겠지만, 선진국이란 기득권자들이 사회적 책무 (일명 노블레스 오블리제) 를 분명히 엄수하며, 정치 집단과 교육 체계가 여러면에서 우수하고, 사회 복지에 투자가 많이 되어 있는 나라일게다.  

미국은 현재 목적없는 전쟁으로 여러 나라의 비판을 사고 있고, 사회전반에 해결 되지않는 문제들이 많고 (cost of freedom..), 특히 경제가 어려워 살기 좋은 나라가 더이상 아닐는지 몰라도, 부정할 수 없이 미국은 선진국이다. 내가 어렸을때 접한 미국이란 나라는, 한국사람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과는 차원이 틀린 나라였다. 그리고 거의 20년이 지금도 안타깝지만 그 gap은 내눈엔 여전하다.

미국도 빈부의 차이가 엄청나나, 미국의 가난한 서민들은 부자들 개인에게 적개심이나 소외감을 안 느낀다, 한국처럼. 미국의 갑부들은, 아니 부자들은, 부의 사회환훤이라는 가진 자의 덕목을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철강사업, 석유사업, software개발 등으로 막대한 부를 이룬 이름있는 사람들의 기부가 아니라도, 유산을 자식들에게 남기는 대신, 모교에, 살던 지역에, 나라에 남긴 이들때문에, 나 조차도 그들 이름을 딴 도서관, 미술관, 공원 등 화려한 공공시설을 많이 이용했었으니까.

어딜가나 핸디캡 우대 시설이 있고, 여성과 아이가 우선이고, 느리거나 모자르거나 딸리는 아이들이 느리거나 모자라도 괜찮다하는 교육을 받는 나라.

노는 걸 좋아하고 시끄럽고 버릇없어 보이고 무례해 보여도, 미국사람들은 그들이 받고 자란 교육때문에, 보고 자란 사회지도층의 행동때문에, 사회 전반에 퍼진 기독교 정신때문에, 내 눈엔 선진국민들이다.

Warren Buffet이 인터뷰에서 그랬단다. 자기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자기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만일 자기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못 그랬을꺼라고.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본인이 하는 일에 아주, 불공평할정도로,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이라고.

그래서 나도 궁금하다. 난 어떤 사람이 될 뻔 했을까. 더 좋은 환경에서, 그러니까 선진국에서 자랐더라면.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엄마를 보면 재미있다. 한국의 재벌은 그러니까 드라마로 서민들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나 한다, 풍자거리가 많으니. 강남은 참 화려하고 좋다. 갤러리아 백화점 가면 여자들 정말 명품보는 눈 하난 탁월하다. 보기 좋다. 그런데, 난 아마 한국 살기 좋다, 잘산다 소리를, 미국에 있을 땐 막연하게, 한국도 이제 선진국이다, 로 들었다. 좋은 물건을 고를 줄 알고, 좋은 음식을 시킬 줄 아는 게, 그게 다가 아닌 것을.

난 내 조국을, 한국과 한국사람을, 당연히 사랑한다. 한국의 힘겹던 역사를 읽거나 들을땐 여지없이 눈물이 핑 돌 만큼. 페허가 된 땅을 일구어 단기간에 이렇게나 부유케 만든 한국사람들을 존경한다.

갑자기 내 자신이 한심해졌다. 좋은 나라에 나가 살아봤으면서 고작 비교만 할 줄 알지, 정녕 어떠한 역할을 하여, 내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해..

왜 난 뛰어나지 못할까. 생각만 하고 행동은 없는 걸까. 왜 난 겨우 나 먹고 살 걱정만 하는 걸까.

오늘 눈 내리고 추운 날 갑자기 드는 생각이고 우울함의 이유이다.

<소울메티트> 무라카미 하루키

27-Dec-10

‘그녀가 도넛이 된 지 벌써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부분의 도넛 인간이 그렇듯 그녀는 자신에게 알맹이가 없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내가 전화를 걸 때마다 매정하게 화를 낸다. “당신은 내 겉모습만 보고 있는 거야. 내 본질은 없어. 당신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아.” 도넛이 된 사람들은 종교상의 이유로 도넛이 된 상대하고 밖에 교재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벌써 2년 가까이 그녀와 만나지 못하고 있다. 도넛이 된 사람들은 토끼 고기를 먹지 않고 지퍼가 달린 옷을 입지 않는다. 필터가 있는 담배를 피우지 않고 펠라티오는 엄하게 금지되어 있다. 살아 있는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것도 허가되지 않는다.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편협하게 살아야만 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스스로의 핵심이 없다는 인식과 토끼를 먹지 않는 것 사이에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가 있단 말인가?

지난번에 나는 술집에서 꽈배기 도넛이 된 젊은 여자를 만났다. “인간의 본질은 무방향성에 있는 거예요.” 그녁가 침대 속에서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비행기에 타지 않지요.” “응, 과연 그러네.” 나는 말했다. 사회는 하루하루 조금씩 복잡해지는 것 같다.’

그냥 이 책 저 책 뒤적이다 눈에 띄는 짤막한 글. 이 글안에 내가 무라카미를 읽는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있네~ 하여.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너무나 유명하고 화려한 작가이다. 나역시 꼭 그의 신작을 챙겨 읽었고 재미있어했다. 사람들이 무라카미에 열광하는 이유는 물론 너무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게 쓰는 그만의 스타일땜이겠다.

나는 근데 재미있어서라기 보담, 위의 저 글처럼 무라카미는 ‘진지’해서 이다. 말도 안되는 주제, 도넛이 된 여자 이야기를 성의없이 끄적댄것 같으나, 이 글에는 일본이나 다른 국가에선 실제로 심각한 맹목적인 종교 행위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지않나? 또 뭐가 있나 모르겠다. 무라카미의 작품 파악이, 쉽지 않거덩.

허황된 주제, 진지하지 않은 말투, 하지만 자세히 읽으면 늘 무겁고 심각한 주제. 멋있는 아저씨다.

청담동 After the Rain

25-Dec-10

Never, ever, really, never drive through Kangnam at 7:30pm Christmas Eve…! 최고!! You will only move after you stare at the red signal light changing into green maybe 4 times. So it took me 40 minutes to go to this restaurant 1km away. Today began with minus 15 C or something, coldest December in 30 years, they say. I have thanked my VW many times today for the heated seat..

Anyhow, we ended up eating Thai at After the Rain in Chungdamdong. Good that the restaurant was at least quiet..

Why is this picture so dark? Fish cake as an appetizer.

This is supposed to be duck meat salad.

Grilled chicken.

Snapper and crab fried rice.

Beef noodles.

And green tea crepe with Christmas tree decoration.

Waitress..

This was After the Rain.

And after coffee.., the crazy traffic and -15C thing was only an experience.

We are expecting snow this Sunday..^^

Merry Christmas!!

24-Dec-10

Merry Christmas everyone!!

전쟁 스트레스

20-Dec-10

설마, 때가 어느 땐데 설마, 그랬는데.

이게 나라가 국민을 생각하는 안보, 그러니까 안전 보장 맞는거지.

걱정마, 나도 대포 쏠 줄 알아.

이게 오늘 국가가 국민을 생각하여 한 안보라는 거지, 그러니까.

목적이 뭐였건. 전쟁 스트레스라니. 별..

화나고 기가 차고 웃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기도가 하고 싶어진다.

한국사람들 불쌍하지 않으시냐고. 이젠 좀 잘 먹고 잘 살게 도와달라고.

누군가가 올린 짧은 말처럼 경제살리기란 달콤한 마시멜로에 눈이 멀어 2007 국민의 오판이 만든 정부라면 돌이켜 달라고. 스무살짜리 해병이 뭔 죄가 있느냐고. 크리스마스건 뭐건 군대 보내놓고 집에서 발 동동거리실 엄마들은 뭔 죄냐고.

가진 거 하나없이, 물려받은 거 하나없이, 그저 닥치는 데로 열심히만 살았던 한국 사람들. 이젠 좀 잘 먹고 잘 살게 도와달라고.

우리나라 하나님이 보호해 달라고.

깜빡 잊고 있었던

18-Dec-10

어제 오늘 내내 맴돌던 생각이, 오늘 저녁 회식 예약되어 있던 식당으로, 그러니까 국회의사당역에서 여의도역까지 15분 거리, 눈이 와 녹다 얼어 죄다 빙판이 된 길을, 우 김회계사 좌 유회계사 팔장을 끼고 (유회계사가 그리 창피하다고 날 버리려 했으나 꼭 붙들고..) 걷는 동안 최고조를 달하다가, 일찍 파하고 지하철로 귀가 하던 중, 해결됬다.

맴돌던 생각이 뭐냐 하면. 왜 여기까지 와, 이 겨울을 겪고 이 고생인가..이다. 유회계사가 옆에서 바짝 부축여 더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도대체 왜 왔냐는둥..등등), 암만 다시 따져봐도, 난 현실적으로 참 그른 판단을 했다, 경솔했다, 돌이키기 쉽지 않은 일을 저질렀다, 한창 돈 벌고 모으고 모기지를 줄였어야 할 나이에 너무 과감했다..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내 경솔함을 탓하며 며칠 살았는데, 오늘 와인 한잔 가볍게 걸치고 왠지 지하철이 타고 싶어 돌아오던 길에, 잠시 잊었던 ‘이유’들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난 절대 경솔하지 않았음을, 역시 난 나 스스로를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름기있는 음식을 먹으면 실제로 얼굴에 여드름이 바로 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난 맛있는 기름기를 먹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꼭 물 한 컵을 마신다. 심하게 운동하는 걸 귀찮아 하지만, 그래도 꼭 일주일에 며칠은 운동을 한다. 정말 소질이 없지만 앞으로도 절대 골프를 포기 안하려 한다. 풀이나 과일보담 빵이나 과자나 고기가 맛있는 줄 알지만, 마켓볼땐 군것질거리를 애써 뺀다. 그리고 늘 걱정을 한다. 혹시 내 몸 어딘가에 나쁜 세포가 살고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가 제일 안 좋다는 명백한 사실때문에라도, 하루빨리 월급쟁이 생활 청산해야하는데..하며.

좀 걸리는 게 있다면 모든 종류의 술을 좋아하여 고건 포기를 못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긴하나, 그래, 난 내 몸을 아끼고 사리고 내 딴엔 매사 최선을 선택하며 심각히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10년 career를 버리고 이민(?)을 왔는데 그 결정에 경솔함이라니, 아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많이 남은 세월 두고봐야 알겠지만, 난 늘 내가 내렸던 크고 작은 숱한 결정들이 최선이었다 믿는다. 물론 누구나 그러하여 각기 틀린 삶을 사는 것이겠지만.

지하철을 타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님 오늘 아침에 눈이 많이 왔대서 대중교통들을 이용하느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고, 거이 한달만에 타보는 지하철 풍경이, 내게 내가 여기 와 있는 이유를 remind한다.

알고 싶어서..이다. 미련이 없을때까지 알고 싶어서. 알고 난 후의 내가, 알기 전의 나보다, 분명 커져있을 것같아서이다.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삶. 다른 교육을 받고, 다른 환경에 부닥쳐있고, 다른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삶. 새벽에 영어학원에 갔다가 출근하는 직장인은, 회사 앞 구두 부스에서 구두닦는 사업을 하는 아저씨는, 한겨울에도 오토바이를 모는 퀵서비스 아저씨는, 아침부터 밤까지 이사람 저사람 가자는 데로 운전을 하는 택시기사들은, 매일 8시면 세탁~하시며 아파트 전층을 돌아다니는 드라이클리닝 아저씨는, 삼일회계법인 회계사는, 세종법무법인 변호사는, 한신평의 대표이사는, 시어머니가 오라면 와야하는 며느리는, 치명적인 병이 유전인 줄 알면서도 애를 셋이나 낳아버린 안타까운 사연의 어머니는, 다 소모하여 늙고 아픈 몸이 전부인 할머니는, 전쟁을 겪고 일제시대를 겪고 정치 과도기를 겪고 IMF를 겪고 아무 공로 없이 이 세대에 좋은 시절을 공짜로 다 물려준 아버지들은, 대체 무슨 할 말이 있으신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모습으로 길을 다니시는지.

그게 알고 싶어서 한 행동이다.

두번째 이유는, 난 내 연봉으로 내 가치가 평가되어야 했던 구조가 싫어서였다. 감히 사람에게 값을 매기다니. 감히 내 이름에 price tag이 붙다니. 지금 생각해도 아니다. 배불러 터진 얘기인 줄 알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 못난 소리인 줄 알지만, 난 나 자신을 고작 수십만불 연봉이 목표일 뿐인 직장인으로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적어도 딱 한 번은 그 어쩔수 없는 틀에서 벗어나야만 했다. 벗어난 후 다시 굴러 들어갈 망정, 절대 단 한번의 반항도 없이 살 수 없었다.

누가 뭐라니 왜 이리 열을 올리며 설명을 해, 역시 후회하는 구나, 누군가 그럴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합리가 아니라, 나 스스로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이다.

난 내가 더 많이 알고 느끼고 경험하여 크고 깊이가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그리하여 남을 측은히 여길 줄 아는 사람,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 되길. 좀 더 나가 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줄 아는 사람, 난 분명 목적이 있어 태어났다 믿는 사람이길 원한다. 그리고 아마 행복은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으로 하루를 사는 오늘에 있지않나 싶다. 물론 더 커진 내가, 나보다 작거나 약한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하면 무척 좋겠다. 글을 쓰는 작가가 그럴 수 있겠다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은 거의 포기했으나.   

그럼 아프리카나 인도쯤은 갔어야지..하지 말고. 그래, 난 서울의 삶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었고, 이 손님말을 믿고 loan을 지르네마네 하는 골아픈 매일매일이 지겨웠고, 백수로 살아도 될 여유가 있었고, 함께 해 줄 남자가 있었다. 그치만 그게 다가 아니란 말..

가끔 글 쓰는 게 좋은 날이 있다, 이렇게.